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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은 문제’를 풀고 있을까?
제37회 한국수학경시대회(KMC)(2018년 전기) 고3 최우수상
작성자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고3 하준수
등록일
2018.08.24
조회수
1,064

안녕하십니까? 이번 한국수학경시대회 고 3 자연 부문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한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3학년 하준수입니다. 또 한 번 운이 따라주어, 지난 수상후기에 농담 삼아 언급한 ‘KMC 그랜드슬램(무상까지 포함하여 KMC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한 번씩 받는 것)’을 실제로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위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수상후기에서는 제가 어떤 배경에서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KMC를 비롯하여 여러 ‘수학 시험’을 볼 때 드는 생각을 여러분께 털어놓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시험을 봐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학 시험을 많이 봤는데, 40분 동안 20개의 객관식 문제를 푸는 학교 시험부터 시작하여 2시간 동안 여섯 개의 서술형 문제를 푸는 KMC 본선, 이틀 동안 4시간 30분(총 9시간)에 세 개(총 여섯 개)의 서술형 문제를 푸는 KMO(한국수학올림피아드) 최종시험까지(비록 결과는 참담했지만) 종류도 다양합니다. 시험 시간은 또 왜 이리 긴지, 몇 시간에 걸친 수학 시험을 보는 날에는 진이 다 빠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시험(특히 수학경시대회)을 계속 봐 왔던 이유는, 바로 새로운 수학 문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지루한 소수 계산 아니면 직사각형 넓이나 구하는 학교 시험만 보다가 KMC를 처음 본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문제였는데,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30문제를 푸는데(물론 다 못 풀었죠.), 칠교놀이 도형들로 직각삼각형을 만드는 방법의 수를 세는 문제를 풀 때는 ‘이걸 셌나, 안 셌나?’ 하며 헷갈려하다 결국에 찍었고, 어떤 글자 위에 거울을 적당히 세웠을 때 생길 수 있는 모양을 찾는 문제를 풀 때는 좌뇌와 우뇌가 서로 거울에 반사되어 모든 게 뒤죽박죽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 날 그런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보는 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즐거운 시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이 틀려본 수학 시험도 처음이었습니다. 결과는 64점으로, 무난하게 본선 통과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본선에서는 처음 보는 서술형 시험을 마주했습니다. 요령도 뭣도 없던 저는 무작정 풀이를 적어나갔습니다. 우연히 그 즈음 알게 된 인도 베다수학(시간을 줄이는 인도의 독특한 계산법)을 쓰고 싶어 그토록 손이 근질거렸는지, 풀이 도중 세 자리수의 덧셈을 하는 부분에서 쓸데없이 이 계산법을 소개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찌되었든, 첫 시험이라 결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은상을 받았습니다. 제게 첫 KMC는 이처럼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 때에도 지금처럼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시상식을 했었는데, 지하에 고급 중국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덤입니다.

지난 수상후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에 감명을 받은 저는 이후 KMC를 모티프로 하여 저만의 수학경시대회인 ‘친도수학올림피아드(CMO)’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생각날 때마다 KMC를 비롯하여 여러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였으며, 다양한 수학문제들을 접하면서(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지만) 점차 ‘좋은 수학문제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문제’는 ‘교훈’을 주는 문제로,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지만, 이를 우리에게 쉽사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보다는, 이를 푸는 과정 자체에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들 수 있겠죠.

유명한 ‘좋은 문제’로는 체스판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2×1 도미노 31개를 이용하여, 대각선에 있는 두 귀퉁이를 잘라낸 8×8 체스판을 온전히 덮을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인데, 처음에는 무작정 여러 번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겠지만, 2×1 도미노가 검정색 칸과 흰색 칸을 한 개씩 덮는다는 사실을 이용하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보통 ‘좋은 문제’들은 간단하고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의 경우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무려 한 시간 반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제가 개최하는 친도수학올림피아드의 경우, 아예 응시자들에게 책, 인터넷 등을 자유롭게 참고할 수 있도록 하면서, 불과 10여 개의 문제를 푸는 데에 2주일의 시간을 줍니다. (귀찮아서 문제지를 열어보지도 않다가 마지막 날에 대충 문제를 훑어보고 못 푼 문제에 아무 답이나 써놓고 제출하는 이들이 종종 있지만) 응시자들에게 ‘고민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죠.

그러나 요새 학생들이 보는 대부분의 수학 시험이 이런 좋은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학은 결국 ‘사고하는 학문’이기에, 수학 시험은 학생들이 얼마나 ‘고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즉, ‘좋은 문제’들을 많이 갖고 있어야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지금 ‘좋은 문제’들을 풀고 있을까요? 50분 동안 놀라운 속도로 25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교 시험이 과연 학생들이 수학을 잘 하는지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전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인 박형주 교수는 수능 수학문제를 분석하며 “생각 연습의 과정이어야 할 수학 교육은 현행 교육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로 변질됐다. 수학의 본질은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고민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학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품게 되는 것이 너무나 속상합니다. 당장은 여러 문제점이 있겠지만, 점차 시험 문제 수를 줄이고 시간을 늘려서 학생들이 ‘좋은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KMC와 같은 수학경시대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저는 더 이상 KMC에 응시하지 않지만, 앞으로 KMC에 응시하여 저처럼 수학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학생이 더 생겨나면 하는 바람입니다.

10년 가까이 제게 재미있는 문제들을 선사해준 KMC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